[유인촌의 동경에서 문화읽기] 도쿄의 돈키호테와 젊은 부부

by caurotc posted Apr 3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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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2007-03-08 14:42]  



도쿄돔의 빅세일

유인촌(연극인, 중앙대연극영화학과 교수) /



돈키호테는 진정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작가 세르반테스가 400여 년 전 만든 인물 돈키호테는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지만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선, 그는 다른 어른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꿈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끝내 ‘철 들지 않은’ 어른이었다. 또, 기사(騎士)이지만 실패나 패배를 모르는 영웅적인 기사가 아니라 매일 실패와 패배를 거듭하는 시골 기사였다.



‘철 들지 않아’ 인간적이었던 돈키호테가 한 말 중에서 내 마음 속을 떠나지 않는 말이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을 잡자”



이루기 힘든 꿈과 사랑을 좇는 일은 위대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 사랑을 좇는 속에서 새로운 예술의 씨앗이 싹 튼다. 위대하고 영원한 예술작품이 태어난다. 그러나 이루기 힘든 꿈과 사랑을 좇는 일은 힘들다. 이루기 쉽다면, 금방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어디 그것이 꿈이며 사랑이겠는가.



돈키호테가 살았던 그 시절에도 많은 세상사람들은 나약하여 꿈을 잃고 살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세르반테스는 이런 꿈을 토해내는 돈키호테를 창조한 것일 법하다.



도쿄에 와서 살림 장만할 때 만난 가게 이름이 뜻밖에도 돈키호테이다. 돈키호테 정신을 잃지 말자고 늘 생각하기 때문에 상점 돈키호테는 내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일본의 여러 곳에 체인점이 있는 데다, 비누부터 침대까지 온갖 생활물품을 구비해놓은 돈키호테는 대량구매, 저가판매 정책으로 다수의 손님을 끌어들인다. 국내에는 이런 유형의 생활용품 건물이나 가게가 운영될 수 없는가 싶다.



우리 동네의 돈키호테에서 매트리스, 이불, 베개 등속을 고르던 이사 첫날 “싸인 좀 해주세요” 라는 한국말이 들려, 깜짝 놀랐다. “한국 관광객이 없는 동네인데 ……”하면서 등을 돌려 보니 젊은 일본여성이 웃으며 서 있다. “저를 아십니까?” 물었다. 나는 한류 배우도 아닌데 일본 여성이 알아보니 의아했고 그래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일본여성 미유, 그의 한국인 남편 김창한과 나는 이제 친구가 되었다. 당시 결혼한 지 한 달쯤 되었던 이들 부부는 지혜로운 절약태도, 다른 문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적극성 등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미유 상은 한국말을 한국의 젊은이처럼 잘 한다.



“몇 년 전 도쿄에서 6개월 간 일본어를 공부했다는데 일본어를 참 잘 하는 한 한국학생을 알게 되었어요. 짧은 시간에 남의 나라 말을 배웠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할 수 있는가 싶어, 나도 똑같이 배워봐야겠다 싶어서 훌쩍 한국에 갔습니다. 고려대에서 3개월, 건국대에서 6개월, 서울대에서 1년 간 한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1년 3개월 간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미유 상은 한국문화, 역사 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되었다. 그렇게 능동적으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 했으니 당연하다.



미유 상과 김창한 부부는 맞벌이이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행동하면 밥도, 술도, 쇼핑도 싸게 든다. 그들에게는 젊은 맞벌이 부부에게서 자주 보이는 소비지상주의적 태도가 안 보인다. 서울은 생활비 많이 드는 순서로 해서 세계 11위인 도시. 서울 역시 물가가 싸다고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도쿄는 세계 5위인 도시. 그래서인가, 정말 모든 물가가 서울의 물가보다 비싸다. 그런 도쿄에서 미유 상 부부는 밥 먹을 때, 쇼핑할 때, 언제나 마일리지 제도를 가진 가게를 이용한다. 그들은 어느 식당이 몇 시에서 몇 시까지 이용하면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는가, 식당의 리스트와 스케줄도 챙기고 지하철 표도 정기권을 산다.



지난 해 12월에 그들 부부를 따라 간 도쿄돔에서의 빅세일은 도쿄 젊은이들의 절약태도를 보여주는 압권이었다. 우리의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친 바로 그 도쿄돔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빅세일은 1년간 팔다 남은 물건들을 사흘간 모두 팔아 치우는 세일인데, 첫날 낮에 갔지만 그 큰 돔 구장을 빙빙 돌아가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에서 자란 신랑 김창한은 일본에서 인터넷사업을 시작하려 한다. 그 신랑과 미유를 따라 도쿄돔에 갔을 때 나는 새로 산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었는데 오늘도 나는 창이 닳도록 알뜰하게 그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서울에서도 연극 제작에 극장 운영의 즐거운 짐을 지고 있어서 무엇이든 아끼는 버릇이 있던 터이지만 도쿄에서 나는 더 아끼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