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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30 11:10

고행이 주는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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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고행이 주는 묘미




  김성녀 중앙대 국악대 학장·연극인  



며칠 전 평소 가까이 지내는 분의 집에 놀러 갔다가 너무나 이쁜 이불을 보았다. 큰 직사각형으로 재단된 천을 이어 붙이고 솜을 두어 손수 만든 멋진 이불이었다. 요즘 멋을 아는 분들이 좋아한다는 퀼트로 만든 이불로, 예전에 어머니들이 못 쓰는 조각 천들을 모아 재봉틀로 드르르 박은 조각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천의 질이나 색채의 조화 등이 뛰어난 품격 높은 예술 작품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탐내는 그 이불은 주인이 손수 한뜸 한뜸 정성들여 만든 작품이라 달라는 말도 못하고 팔라는 말도 못해 다들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만드는 과정을 듣던 사람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했다. 이 바쁜 세상에 누가 쪼그리고 앉아 수천만 번의 바느질을 할 수 있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겐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들은 기피대상 1호가 되었다. 경제적인 숨통이 트이면서 우리의 삶은 마치 인스턴트 식품처럼 쉽고 빠르고 편하게 사는 방법만 찾아다니고 있다. 반면에 빨리 절망하고 쉽게 좌절하며 어려움을 해결하기보다는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고행은 과연 기피해야 할 대상일까? 사전적 의미의 고행이란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육신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그것을 견디어 내는 수행을 말한다.

깨달음이란 그동안 많은 수행자들이 평생을 수행하며 얻고자 하는 최고의 덕목이다.

고행이란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생각되어졌다.

그러나 옛날 어렵던 시절에는 수행이 목적이 아니라 생활전선에서 알게 모르게 고행을 겪는 사람들이 숱하게 많았다. 그것은 먹고살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의 고행이었지 깨달음이나 자아를 찾기 위한 길은 아니었다. 그리고 고행과 함께 열심히 살아 온 우리 부모들은 단단한 정신력으로 무장된 강인한 투사가 되어 나라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부모들의 고생담은 현실 감각이 없는 옛날 얘기로 자식들에게 씨가 먹히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사람들은 점점 나약해지고 정체성에 시달리다 하나 둘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나름의 고행길을 찾아 떠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산티아고 가는 길’이 요즘 인기 있는 고행의 방법이다. 스페인의 소도시인 산티아고는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순교한 곳이다.

예로부터 많은 교인들이 순례자의 의미로 이 길을 걸었고 지금도 걷고 있지만, 지금은 종교인보다는 자유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800㎞를 하루 10시간씩 40일을 걷는 고행 속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친절 바이러스에 감염돼 나누는 기쁨, 베푸는 행복을 체험한다고 한다.

사회적 지위나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달려만 가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잠시라도 속도를 멈출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사람들로 가득 찬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힘이 솟고 새벽부터 오후까지 걷다보면 육신의 고통과 함께 외로움과 그리움, 사랑, 욕망, 꿈 등 온갖 상념들이 스치고 고행의 끝자락에 긍정의 힘이 밀려온다는 것.

모자라고 못난 자기에 대한 긍정, 이해하지 못하던 타인에 대한 긍정, 현재에 대한 긍정, 오늘을 사는 나에 대한 긍정, 오늘이 마지막인 날인 듯 뜨겁게 사랑하고, 나누고, 더불어 같이 살아내는 것. 그 긍정의 깨달음이 밀려와 삶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현명하고 강인한 사람들은 고행 없이도 삶의 이치를 깨닫겠지만 뿌리가 약해 흔들리는 많은 약한 사람들에겐 다양한 고행을 통해 삶을 재충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 역시 산티아고로 훌쩍 떠나고 싶지만 삶의 기반이며 제약인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갈 용기가 없어 대신 환갑을 맞은 남편에게 손수 만든 명품 이불을 선물하는 기쁨의 고행을 택할까 한다.

김성녀 중앙대 국악대 학장·연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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