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허재 `농구천재'에서 `명장'으로

by caurotc posted May 0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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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 허재 "만세" (전주=연합뉴스) 최영수 기자 = 1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프로농구 챔프 7차전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한 KCC의 허재 감독이 우승이 확정적이자 만세를 부르고 있다. 2009.5.1 kan@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던 허재(44) 전주 KCC 감독이 사령탑 취임 3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허재 감독은 1일 전주 체육관에서 열린 2008-2009 동부프로미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 7차전에서 승리를 지휘하며 시리즈 전적 3승2패로 우승 기쁨을 맛봤다.

국내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컵을 차지하는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허재 감독은 선수 시절 `농구 대통령' `농구 천재' `농구 9단'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닌 최고의 스타였다.

상명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허 감독은 용산중학교를 거쳐 농구명문 용산고에 진학해 고교 1학년이던 1981년 쌍용기대회를 제패하면서 단숨에 고교 무대를 평정했다.

고교 최고의 선수로 주목을 받던 그였지만 졸업 후 당시 대학농구를 양분하던 연세대와 고려대를 거부하고 중앙대로 진학했고 1학년이던 1984년 춘계연맹전에서 팀을 정상으로 이끌고 신인상을 받아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는 환상적인 드리블에 의한 개인돌파 능력, 송곳 패스, 화려한 골밑 플레이를 선보이며 한기범, 김유택 등과 호흡을 맞춰 1986년 농구대잔치 2차 대회와 추계연맹전 우승을 이끄는 등 중앙대를 대학 최강팀의 반열에 올려놨다.

대학 졸업 후 기아자동차에 입단, 1991년 1992년 팀을 농구대잔치 정상으로 이끌고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는 등 1990년대 농구대잔치에서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프로농구에서도 허재 감독의 명성은 시들지 않았다. 원년(1997년)에는 기아 우승의 주역이었고 1997-98시즌에도 팀의 준우승과 함께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됐다.

이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다 2002-03시즌 TG삼보의 챔피언결정전 때 노장 투혼을 발휘하며 마지막 우승을 경험했다.

그는 개인기록에서도 프로농구 통산 365경기 출장과 4천524득점, 1천572어시스트, 1천148리바운드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2003-2004시즌 원주 TG에서 플레잉코치로 활약하며 마지막으로 우승 반지를 꼈던 허재 감독은 KCC 지휘봉을 처음 잡았던 2005-2006시즌 팀을 4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으며 `스타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스포츠계의 속설을 뒤집었다.

특히 이번 시즌 팀이 정규리그 초반 8연패까지 당하며 9위까지 밀려났지만 `국보급 센터' 서장훈을 내보내고 신인 가드 강병현을 받는 트레이드를 하는 등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며 결국 챔피언결정전까지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프로농구 출범 이후 시즌 도중 8연패 이상 당한 팀의 최고 성적이 이전까지 1999-2000시즌 기아가 9연패를 당하고도 6위를 했던 것이라는 점을 보면 KCC가 8연패 충격을 딛고 우승까지 차지한 것은 허재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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